올해 5월 말, 국민연금 적립금은 1,848조 원을 넘어섰고 수익률은 26.18%에 달했습니다. 기금 설치 이후 최고 기록이었습니다. 그런데 두 달 만에 국내주식 평가액이 120조 원 이상 증발했습니다. 저는 이 숫자를 처음 봤을 때 솔직히 믿기지 않았습니다. 반년 만에 쌓은 것을 반년 만에 되돌려준 꼴이라는 말이 과장이 아니었습니다.
고점매도 기회를 날린 리밸런싱 유예의 진짜 문제
국민연금이 올해 국내주식에서 세 자릿수 수익률을 냈다는 건 사실입니다. 5월 말 기준 국내주식 수익률은 106.76%였고, 보유 평가액은 264조 원에서 544조 원으로 두 배 가까이 불어났습니다. 전체 포트폴리오에서 국내주식 비중도 29.4%까지 치솟았습니다.
문제는 이 시점에서 전략적자산배분(SAA)에 따른 리밸런싱이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여기서 SAA란 연기금이 중장기 목표 비중을 정해두고, 특정 자산군이 그 범위를 벗어날 경우 비중을 조정하는 자산배분 원칙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주식이 너무 많이 올랐으면 일부 팔아서 원래 비율로 돌려놓는다"는 규칙입니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말 국내주식 목표 비중을 14.9%로 설정했다가, 올해 5월 기금운용위원회에서 이를 20.8%로 대폭 상향했습니다. 그리고 SAA 허용범위 이탈 시 리밸런싱을 한시적으로 유예하는 조치를 취했습니다. 국내 증시 변동성이 크다는 게 명분이었습니다.
제가 이 결정을 처음 접했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기금 운용의 기본은 원칙을 지키는 것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고점 구간에서 목표 비중을 오히려 올리고 매도도 미룬다는 건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결정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같은 시기 외국인 투자자들은 코스피에서 약 150조 원어치를 순매도하며 상승분의 과실을 챙겼고, 국민연금은 그대로 들고 급락을 맞았습니다.

이번 리밸런싱 논란에서 핵심적으로 짚어야 할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5월 말 코스피 종가는 8,476이었으나 7월 말 기준 6,595까지 22% 이상 하락했습니다.
- 국민연금의 5월 말 국내주식 보유액 544조 원에 이 하락률을 적용하면 평가손 추정액은 120조 원을 넘습니다.
- 같은 기간 외국인은 9조 원 넘게 순매도한 반면 연기금은 약 1조 원 순매수에 그쳤습니다.
- 국민연금의 2025년 연간 연금지급액은 약 49조 7,000억 원으로, 이번 평가손은 3년 치 지급액에 맞먹는 규모입니다.
국회예산정책처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운용수익금 231조 6,000억 원이 기금 소진 시점을 4년 앞당겼는데, [출처: 국회예산정책처] 이번 평가손은 그 효과를 3년 가까이 되돌려놓은 것으로 추산됩니다. 반년 사이에 벌어진 일입니다.
외국인매도와 기금손실이 드러낸 구조적 과제
7월 한 달간 코스피와 코스닥 양대 시장에서 이틀 연속 서킷브레이커(CB)가 발동됐습니다. 여기서 서킷브레이커란 주가가 일정 수준 이상 급락할 때 시장 과열과 패닉 매도를 막기 위해 거래를 일시 정지시키는 제도입니다. 한국 증시 역사상 유례없는 장면이었고, 제 경험상 이런 국면에서 기관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국민연금은 이 구간에서 약 1조 원 규모를 순매수했습니다. 시장 안정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지만, 동시에 추가 매수 여력이 크지 않다는 진단도 나왔습니다. 시장에서는 국민연금의 SAA 허용범위를 ±6%로 추정하는데, 주가 급락으로 국내주식 비중이 24.5%까지 자동으로 낮아진 상황에서도 목표 비중(20.8%)과의 격차가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주가가 빠지면서 매도 필요 규모가 줄어드는 이른바 '자동 리밸런싱' 효과가 나타난 건데, 이것이 기금 운용 원칙의 정상적 작동인지 아니면 뒤늦은 수습인지는 보는 시각에 따라 달라집니다.
일반적으로 국민연금은 '장기 투자자이므로 단기 변동에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저도 이 원칙 자체를 부정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제가 이번 사태를 보면서 느낀 건, 장기 투자 원칙과 리밸런싱 원칙은 서로 충돌하는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고점에서 일부 차익을 실현하는 건 장기 수익률을 지키기 위한 행동이지, 단기 대응이 아닙니다.
노무라증권 보고서는 "국민연금의 국내 자산 배분 비중이 현실적인 한계 수준에 근접하면서 기관의 추가적인 수급 지원이 약화됐다"고 진단했습니다. [출처: 노무라증권 리서치] 제 경험상 이 분석은 상당히 정확합니다. 국민연금이 고점에서 비중을 줄이지 못한 탓에 정작 급락장에서 적극적으로 살 수 있는 카드가 줄어든 셈입니다.

여기에 더해 전술적자산배분(TAA)도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TAA란 SAA로 정한 중장기 목표 비중 안에서 단기 시장 상황에 따라 소폭 조정할 수 있는 유연성 범위를 말합니다. 국민연금의 TAA 한도는 ±2%로 알려져 있는데, 이 수준으로는 급변하는 시장에서 의미 있는 대응이 어렵습니다. SAA 한도를 비공개로 유지한 채 운용하는 방식도 외부 검증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입니다.
이 지점에서 저는 개인적으로 투명성 문제를 더 무겁게 봅니다. 기금운용위원회가 올해 1월 의결한 국내주식 비중 확대 관련 회의록을 2030년까지 비공개로 묶은 것은, 투자 판단인지 정책적 고려인지 외부에서 구분할 방법이 없다는 뜻입니다. 국민이 낸 보험료로 운용되는 기금인 만큼, 사후 검증이 가능한 수준의 공개 원칙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결국 이번 사태는 국민연금이 가진 구조적 딜레마를 다시 한번 드러냈습니다. 수익률, 시장 안정, 연금 재정, 정책적 기대를 동시에 감당해야 하는 기관이다 보니 원칙이 유연해지고, 그 유연함이 때로는 실책으로 이어집니다. 저는 이번 리밸런싱 유예가 단순한 운용 판단 실수라기보다는, 기금 운용 원칙의 독립성과 투명성이 강화되어야 한다는 신호로 읽힙니다. 국민연금의 결정 하나가 개인투자자의 심리와 노후 재정 모두에 영향을 미치는 만큼, 원칙이 언제 왜 흔들렸는지를 국민이 알 수 있어야 합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투자·금융 조언이 아닙니다.
참고 :
https://www.mt.co.kr/stock/2026/08/03/2026080311181646960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8690039&plink=COPYPASTE&cooper=SBSNEWS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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