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이 배터리 소재가 된다는 게 처음엔 잘 와닿지 않았습니다. 화산 냄새 나는 그 황이요. 그런데 중국 칭화대 연구팀이 이 황을 가지고 549Wh/kg이라는 숫자를 꺼내들었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지금 국내 배터리 3사가 중국에 점유율을 내어주는 상황에서, 이 소식은 단순한 연구 결과로 넘기기 어려웠습니다.
황이 왜 다시 주목받는가, 리튬황 배터리의 배경
리튬이온 배터리의 에너지 밀도 한계가 300Wh/kg 언저리에서 막혀 있다는 건 배터리 업계 종사자들 사이에서 꽤 오래된 이야기입니다. 제가 이 시장을 지켜보면서 느낀 것도 비슷합니다. 니켈 함량을 높이고, 셀 구조를 바꾸고, 음극재를 흑연에서 실리콘으로 넘기려는 시도들이 다 이 한계를 조금씩 밀어붙이는 작업이었거든요.
리튬황 배터리는 이론상 에너지 밀도가 리튬이온의 두 배 이상입니다. 황의 매장량이 풍부하고 가격도 훨씬 저렴하다 보니, 차세대 전지 후보로 수십 년간 연구되어 왔습니다. 문제는 늘 같은 벽이었습니다. 충방전 과정에서 폴리황화물(lithium polysulfide)이 전해질 속으로 녹아 들어가는 이른바 셔틀 효과(shuttle effect)가 발생합니다. 여기서 셔틀 효과란 폴리황화물 중간 산물이 양극과 음극 사이를 오가며 용량을 갉아먹는 현상으로, 배터리 수명을 급격히 단축시키는 핵심 원인입니다. 이걸 막지 못하면 사이클 수명이 상용화 기준에 한참 못 미칩니다.
칭화대 연구팀은 이 문제를 전혀 다른 방향에서 풀었습니다. 물리적으로 폴리황화물을 가두거나 코팅으로 막는 게 아니라, 황 전환 반응(sulfur conversion reaction) 경로 자체를 분자 수준에서 재설계한 것입니다. 황 전환 반응이란 황이 충방전 과정에서 다양한 중간 산물을 거쳐 황화리튬으로 변환되는 일련의 전기화학 반응을 말합니다. 연구팀은 양자화학 계산과 머신러닝을 결합해 196개 후보 분자를 분석했고, 결국 4-트리플루오로메틸-2-클로로피리미딘이라는 기능성 분자를 전해질에 적용했습니다.
결과는 꽤 구체적이었습니다. 1C 조건, 즉 완전 충전 용량과 같은 크기의 전류로 충방전할 때 800회 사이클 후에도 용량 유지율이 81.7%였고, 14.2Ah급 파우치 셀에서 549Wh/kg의 에너지 밀도를 기록했습니다. 이 숫자가 중요한 이유는 실험실 코인셀이 아니라 실제 제품에 가까운 파우치 셀 규격에서 검증됐다는 점입니다.
K배터리는 지금 어디쯤 있는가, 점유율 하락의 실상
이 연구가 나온 시점이 하필 K배터리 업계로선 가장 불편한 때입니다. 2026년 1분기 기준으로 중국을 제외한 글로벌 전기차용 배터리 사용량은 전년 동기 대비 17.4% 늘었습니다. 시장은 커지고 있는데, LG에너지솔루션·SK온·삼성SDI 3사의 합산 점유율은 같은 기간 8.3%p 빠진 29.6%까지 내려앉았습니다([출처: SNE리서치](https://www.sneresearch.com)).
업체별 수치를 보면 상황이 더 선명해집니다.
- LG에너지솔루션: 20.3GWh, 전년 대비 0.1% 감소
- SK온: 9.0GWh, 전년 대비 10.2% 감소
- 삼성SDI: 5.3GWh, 전년 대비 27.7% 감소
반면 CATL과 BYD 두 곳의 합산 점유율은 같은 기간 37%에서 51%로 뛰었습니다. 이게 단순히 전기차 수요 둔화 탓만은 아닙니다. 제가 직접 업계 흐름을 지켜보면서 느낀 건, 한국 완성차 업체들조차 중국산 배터리 탑재 비중을 늘리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현대차·기아·KG모빌리티가 중국 배터리를 선택한다는 건, 단가와 공급 안정성에서 중국이 이미 상당한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한국 기업들도 가만있지는 않았습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시카고대·UC샌디에이고와 공동으로 황 양극 기반의 전고체 구조 배터리를 시연했고, 삼성SDI는 컬럼비아대와 함께 리튬 금속 음극 안정화 연구를 공개했습니다. 리튬 금속 음극이란 기존 흑연 음극 대신 리튬 금속을 직접 사용하는 구조로, 에너지 밀도를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지만 반응성이 강해 안전성 확보가 핵심 과제입니다. SK온도 황화물계 전고체 리튬 금속 배터리 수명 개선 연구를 발표했습니다.
문제는 이 연구들이 전고체 경로에 집중돼 있다는 점입니다. 칭화대 사례가 던지는 질문은 여기서 시작됩니다. 전고체와 별개로, 액체 전해질 기반 리튬황에서도 분자 설계 혁신만으로 성능 도약이 가능하다면, 한국 기업들이 선택한 경로가 충분한가 하는 것입니다.
다음 싸움의 판은 어디서 벌어지는가, 차세대 전지 전망
솔직히 칭화대의 이번 결과가 곧바로 전기차 양산 셀로 이어진다고 보진 않습니다. 리튬황 배터리가 상용화되려면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습니다.
- 리튬 금속 음극의 장기 안전성 확보
- 고온·저온 환경에서의 일관된 성능
- 대면적 전극에서의 균일성 유지
- 자동차용 대형 모듈·팩 단위 성능 검증
- 셀 팽창 문제와 양산 공정 호환성
14.2Ah급 파우치 셀과 전기차용 대형 셀은 엄연히 다른 과제입니다. 제 경험상 연구 단계 수치가 양산 현장으로 넘어올 때 절반 이상이 걸러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중장기 구도는 다릅니다. 리튬황이 먼저 상용화될 가능성이 높은 영역은 드론, 전기수직이착륙기(eVTOL), 장거리 무인기, 군용 무인 플랫폼입니다. 이 시장에서는 무게가 곧 성능이기 때문에, 549Wh/kg이라는 숫자는 단순한 벤치마크가 아닙니다. 같은 무게로 더 오래 날고, 더 멀리 가고, 더 많은 짐을 실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움직임이 하나 더 있습니다. 엘앤에프가 대구 국가산업단지에 LFP(리튬인산철) 양극재 공장 준공을 앞두고 있습니다. LFP란 리튬·인산·철을 주요 성분으로 하는 양극재로, 에너지 밀도는 삼원계보다 낮지만 안전성과 원가 경쟁력이 뛰어나 ESS(에너지저장장치)와 중저가 전기차에 적합합니다. 연 3만 톤 규모로 시작해 2027년 6만 톤까지 확대 예정이며, 미국 시장의 중국산 배터리 고율 관세(43% 이상) 환경에서 비중국 공급망을 노리는 전략입니다([출처: 비즈니스포스트](https://www.businesspost.co.kr)).
이 LFP 움직임은 단기 수익 방어에는 필요하지만, 칭화대 사례가 보여주는 원천기술 경쟁과는 트랙이 다릅니다. 제가 직접 이 흐름을 보면서 걱정스러운 부분이 바로 이겁니다. 한국 기업들이 LFP와 ESS로 현금을 지키는 사이, 기능성 분자 설계와 AI 기반 소재 탐색 분야의 원천 특허를 중국이 선점해버리면 경쟁 구도가 바뀔 수 있습니다.
칭화대 연구팀이 분자 설계 데이터를 먼저 확보했다는 건, 특허 전쟁에서 한국이 수비 입장에 서게 될 수도 있다는 신호입니다. 누가 황 전환 반응의 메커니즘을 설계하고, 누가 기능성 전해질 분자의 지식재산권을 쥐느냐가 다음 10년의 배터리 경쟁을 가를 수 있습니다.

리튬황 배터리 기술이 성숙해지는 속도는 아직 불확실합니다. 그러나 이번 개발은 한국 배터리 업계에 제조 경쟁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습니다. 전고체, 리튬황, 기능성 전해질, AI 소재 탐색을 하나의 플랫폼으로 묶는 방향으로 연구개발 전략이 재편되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방어적으로 따라가는 것과 선제적으로 판을 짜는 것은, 결과가 완전히 다를 수 있으니까요.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투자 조언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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