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앱을 열었더니 반도체 관련 종목들이 일제히 초록불이었습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는 물론이고 미국 쪽 반도체 ETF까지 한꺼번에 뛰어오른 날, 저도 '혹시 지금이라도 올라타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날, 2008년 금융위기를 예측해 영화 '빅쇼트'의 실제 모델이 된 마이클 버리가 반도체주 전반에 공매도 포지션을 공개했습니다. 상승장 한복판에서 "이게 끝의 시작"이라고 선언한 셈입니다.
AI 랠리의 배경: 한국발 800조 투자가 불 질렀다
2025년 6월 29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광주 등 서남권에 총 896조원을 투자해 반도체 공장 4기를 짓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이 소식이 뉴욕 증시에 전해지자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SOX)가 하루 만에 3.92% 급등했습니다. 여기서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SOX)란 엔비디아, ASML,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 등 미국 주요 반도체 기업 30개 종목으로 구성된 업종 대표 지수로, 반도체 시장 전체의 온도를 재는 바로미터 역할을 합니다.
AMD가 6.86%, 인텔이 7.23% 뛴 것은 물론이고, 굴착기와 불도저를 만드는 캐터필러까지 AI 데이터센터 건설 인프라 수혜주로 묶여 올해 상반기에만 86% 올랐습니다. 제가 직접 포트폴리오를 점검해보니, 반도체 관련 ETF 하나만 담고 있었는데도 수익률이 가파르게 올라 있었습니다. 그 열기가 얼마나 뜨거운지 숫자로 느껴졌습니다.
같은 기간 메모리 기업 샌디스크는 연초 대비 858% 상승이라는 숫자를 찍었고, 번스타인은 목표주가를 1,700달러에서 3,000달러로 단숨에 높여 잡았습니다. 마이크론은 이번 분기 매출 415억 달러를 예고하면서 낸드(NAND) 부문 전년 대비 360% 성장이라는 실적을 공개했습니다. 여기서 낸드(NAND)란 전원이 꺼져도 데이터가 사라지지 않는 비휘발성 플래시 저장장치로, 스마트폰 내장 저장공간이나 기업용 SSD에 쓰이는 핵심 반도체입니다. AI가 수백만 건의 추론(inference)을 동시에 처리하는 단계에 접어들면서 GPU보다 이 저장장치가 병목이 된다는 분석이 나오기 시작했고, 시장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메모리·스토리지 쪽으로 옮겨간 것입니다.
반도체 수퍼사이클: 버리의 경고가 틀렸다고 단언할 수 없는 이유
버리가 공매도를 공개한 근거는 간단하지만 묵직합니다. 현재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가 200일 이동평균선보다 약 65% 높은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여기서 200일 이동평균선이란 지난 200거래일 동안의 주가 평균값을 이은 선으로, 시장 참여자들이 주가가 '장기 추세 대비 얼마나 과열됐는지' 판단하는 기준선으로 널리 쓰입니다. 이 괴리율이 65%에 달한다는 건, 2000년 닷컴버블 붕괴 당시에만 도달했던 수준이라는 뜻입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그냥 막연히 '버블 아닐까'라고 느끼는 수준이 아니라, 수치로 2000년 닷컴버블과 직접 비교할 수 있는 지표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꽤 무겁게 다가왔습니다.
버리의 이번 베팅이 특별히 눈에 띄는 부분이 있습니다.
- 캐터필러를 주당 1,060.98달러에 생애 처음으로 공매도했다고 밝혔습니다. 과거엔 항상 롱(매수) 포지션으로만 접근했던 종목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남다릅니다.
- 엔비디아,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 테슬라, 그리고 반도체 ETF인 SOXX까지 공매도 포지션을 새로 잡았습니다.
- PSR(주가매출비율)이 30여 년 만에 최고치라는 점을 캐터필러 고평가의 근거로 제시했습니다. PSR이란 시가총액을 연간 매출액으로 나눈 값으로, 수익이 적은 성장주의 고평가 여부를 판단할 때 주로 활용합니다.
반면 마이크론 CEO 산제이 메흐로트라는 "글로벌 메모리 공급 부족이 2027년 이후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했습니다. 2023년 메모리 가격이 정상 수준의 3분의 1까지 폭락하던 시절에 대형 고객사들의 단가 압박이 업계 전체의 증설 여력을 고갈시켰고, 첨단 팹 건설에 수년이 걸리는 구조적 제약이 이번 사이클을 떠받친다는 논리입니다. [출처: 마이크론 테크놀로지 공식 IR]
다만 제 경험상 이 두 입장은 둘 다 틀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공급 부족이 구조적으로 길어진다'는 명제와 '밸류에이션이 이미 그 기대를 과도하게 반영했다'는 명제는 동시에 성립하기 때문입니다. 낙관론과 회의론이 같은 팩트에서 정반대 결론을 내놓는 장면이 바로 이 사이클의 핵심 긴장입니다.
투자 전망: 7월 10일 이후 어떻게 볼 것인가
시장이 당장 주목하는 변수는 SK하이닉스의 미국 ADR(주식예탁증서) 상장입니다. 여기서 ADR(American Depositary Receipt)이란 해외 기업의 주식을 미국 달러로 미국 증시에서 직접 거래할 수 있도록 만든 증서로, 외국 투자자가 환전이나 해외 계좌 없이도 해당 기업 주식에 투자할 수 있게 해주는 수단입니다. SK하이닉스는 7월 10일 전후로 나스닥에 ADR을 상장할 예정이며, HBM(고대역폭메모리) 시장 점유율이 약 60%에 달하는 만큼 미국 투자자들의 시선이 마이크론에서 SK하이닉스로 분산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HBM(고대역폭메모리)이란 여러 장의 D램 칩을 수직으로 쌓아 초고속으로 데이터를 주고받을 수 있게 만든 차세대 메모리로, AI 연산에서 GPU와 직접 맞닿는 핵심 부품입니다. 엔비디아 GPU에 HBM을 공급하는 SK하이닉스가 미국 투자자들의 직접 매수 대상이 된다는 것은 구조적으로 의미 있는 변화입니다.
미국 투자정보매체 모틀리풀은 마이크론 주가가 7월 10일 이후 조정을 받을 수 있다면서도 급격한 매도세는 아닐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이미 살 수 있었던 종목이 새로 등장하는 것과는 다르다는 이유에서입니다. S&P500은 2분기에만 14.9% 올라 6년 만에 최대 분기 상승률을 기록했습니다. [출처: S&P Global]

버리의 공매도가 항상 적중한 건 아닙니다. 테슬라 공매도나 2023년 미국 증시 전체를 겨냥한 풋옵션 베팅은 시장 반등으로 기대만큼 성과를 내지 못했습니다. 방향성은 맞지만 타이밍이 빨라 손실을 보거나 포지션을 조기에 청산하는 사례가 반복됐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제가 보기엔 버리의 경고를 '언젠가는 맞을 경고'로 받아들이는 게 현실적입니다. 문제는 그 '언젠가'가 지금인지, 아니면 한 분기 더 뒤인지 아무도 모른다는 점입니다.
수퍼사이클이 구조적으로 길게 간다는 낙관론도, 닷컴버블과 같은 과열이라는 회의론도 각자 나름의 근거가 있습니다. 저 역시 섣불리 한쪽 손을 들기보다는 보유 비중을 점검하고, 7월 이후 실적 발표와 HBM 수급 데이터를 지켜보는 쪽을 택할 생각입니다. 지금 시장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틀린 판단이 아니라, 아무 근거 없이 쏠림을 따라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투자 조언이 아닙니다. 투자 결정은 반드시 본인의 판단과 책임 하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참고 :
https://www.chosun.com/economy/money/2026/07/01/MWKA7QYSXVD7LIKU7GD3VIR4PA/
'경제'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국민연금 리밸런싱 (매도 규모, 시장 불안, 투자 전략) (0) | 2026.07.01 |
|---|---|
| 반도체 인재 유출 어떡하나? (추격 속도, 인증 경쟁, 인력 양성) (0) | 2026.06.30 |
| 애플·삼성전자 장기투자 (아이폰 수익구조, 메모리 가격, 복리 투자) (0) | 2026.06.29 |
| 논란중인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입지 논란, RE100, 팹 생산능력) (0) | 2026.06.28 |
| 미토스와 새마을금고 황당한 횡령 사건 (장난감지폐, 내부통제, AI보안위협) (0) | 2026.06.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