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저는 이 두 사람의 만남을 처음엔 그냥 "악수하고 사진 찍는 자리" 정도로 봤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선밸리 콘퍼런스 현장 사진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파운드리 사업을 총괄하는 한진만 사장이 이재용 회장과 나란히 서 있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이게 단순한 친목 자리가 아니라는 걸 느꼈습니다. 광주 팹, HBM4E, 데이터센터까지 얽힌 판이 생각보다 훨씬 크게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선밸리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2026년 7월 9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미국 아이다호주 선밸리 리조트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함께한 사람이 한진만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장이라는 점이 핵심이었습니다. 선밸리 콘퍼런스는 미국 투자은행 앨런 앤드 컴퍼니가 1983년부터 매년 주최하는 비공개 네트워킹 행사입니다. 쉽게 말해 전 세계 IT·미디어 업계 최고 경영진들이 카메라 없이 속 얘기를 나누는 자리입니다. 올해는 제프 베이조스, 마크 주커버그, 순다르 피차이, 팀 쿡, 샘 올트먼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제가 이 행사에 주목한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파운드리 담당 사장이 동행했다는 사실입니다. 이건 단순히 인사치레 자리가 아니라는 신호입니다. 삼성전자는 최근 테슬라와 대규모 파운드리 공급 계약을 체결했고, 엔비디아의 언어처리장치(LPU)인 그록(Groq)3 생산도 맡고 있습니다. 여기서 파운드리란 반도체를 직접 설계하지 않고 다른 기업의 설계를 위탁받아 생산하는 사업을 의미합니다. 제조 능력이 곧 경쟁력인 이 시장에서, 어떤 고객사를 확보하느냐가 기업 가치를 좌우합니다.
이달 말에는 이 회장이 실리콘밸리에서 젠슨 황 엔비디아 CEO와 공식 회동도 추진 중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성사된다면 지난해 10월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열린 이른바 '깐부치킨 회동' 이후 약 9개월 만입니다.
HBM4E가 왜 이 회동의 핵심인가
삼성전자는 지난 5월 말 세계 최초로 HBM4E 샘플을 엔비디아 등 주요 고객사에 공급했습니다. HBM4E란 고대역폭메모리(HBM)의 7세대 제품으로, 쉽게 말해 AI 연산에 필요한 데이터를 초고속으로 처리하기 위해 메모리 칩을 수직으로 쌓아 올린 반도체입니다. AI 가속기에 들어가는 핵심 부품이기 때문에 엔비디아 GPU와 함께 작동해야 제 성능이 나옵니다.
제 경험상 반도체 업계에서 "샘플 공급"은 단순한 기술 시연이 아닙니다. 검증 일정이 시작됐다는 의미이고, 이후 최종 양산 계약으로 이어지는 첫 관문입니다. 지금 이 회동이 추진되는 타이밍이 HBM4E 검증 시점과 맞물려 있다는 점은 우연이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현재 엔비디아의 AI 가속기는 공급보다 수요가 훨씬 많은 상태입니다. 빅테크들이 줄을 서서 주문하는 상황이고, 국내 기업들은 지난해 이재명 대통령과 젠슨 황 CEO의 회동을 계기로 AI 칩 26만 장을 확보하는 성과를 낸 바 있습니다. [출처: 연합뉴스] 이런 구조에서 삼성전자가 메모리뿐 아니라 파운드리까지 엔비디아와 협력 범위를 넓히려는 건 사업적으로 당연한 수순입니다.
이번 회동에서 논의될 핵심 의제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HBM4E 검증 일정 및 최종 양산 협력 방안
- 파운드리 분야 신규 위탁 생산 수주 확대
- 광주 팹 및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관련 납품 비중 조율
- AI 데이터센터 구축을 위한 엔비디아 AI 칩 확보 협의
광주 팹과 데이터센터, 엔비디아 없이는 안 된다
지난달 29일 삼성, SK가 정부와 함께 발표한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 프로젝트'는 규모 자체가 압도적이었습니다. 광주에 800조 원 규모의 반도체 공장을 짓고, 전국에 1,000조 원 이상의 AI 데이터센터를 구축하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숫자를 보고 솔직히 저도 잠깐 멈췄습니다. 이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계획인지 의문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가능하든 아니든, 이 계획이 실현되려면 반드시 넘어야 할 벽이 있습니다. 바로 엔비디아입니다. AI 데이터센터를 구축하려면 서버 안에 엔비디아의 GPU(그래픽처리장치)가 들어가야 합니다. GPU란 원래 그래픽 처리를 위해 개발된 반도체인데, 병렬 연산 능력이 뛰어나 AI 모델 학습과 추론에 가장 적합한 칩으로 자리 잡은 것입니다. 현재 AI 데이터센터 시장에서 엔비디아의 GPU 점유율은 압도적입니다. [출처: 한국반도체산업협회]
광주 팹이 성공적으로 가동되려면 엔비디아 납품 비중을 높여야 합니다. 경기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도 마찬가지입니다. 공장을 짓는 것보다 그 공장에서 만든 반도체를 누가 사줄 것이냐가 더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 회장이 이 시점에 선밸리에서 주요 빅테크 경영진을 만나고 젠슨 황과의 회동을 추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SK하이닉스도 같은 전장에 뛰어들었다
이재용 회장이 선밸리에 있는 것과 거의 같은 시점에,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뉴욕에 있었습니다. SK하이닉스의 미국주식예탁증서(ADR)를 나스닥에 상장하는 기념식 참석을 위해서입니다. 여기서 ADR이란 미국 외 기업이 미국 증시에서 거래될 수 있도록 발행하는 예탁증서로, 쉽게 말해 한국 기업의 주식을 미국 투자자들이 달러로 살 수 있게 만든 증권입니다.
SK하이닉스가 이번 ADR 상장으로 조달한 자금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1기 팹 건설, 청주 어드밴스드 패키징 팹, 극자외선(EUV) 장비 확보 등에 투입될 예정입니다. EUV란 극자외선(Extreme Ultraviolet)을 이용해 반도체 회로를 더 미세하게 새기는 노광 기술로, 최첨단 반도체 양산에 필수적인 장비입니다.
제가 보기에 삼성과 SK가 거의 동시에 미국에서 움직이는 건 의미심장합니다. 두 회사가 경쟁하면서도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는 신호이기 때문입니다. 엔비디아라는 공통 고객을 두고 메모리 납품 경쟁을 하면서, 동시에 AI 반도체 생태계 전체에서 한국 기업들의 존재감을 키우려는 움직임으로 읽힙니다.
결국 지금 이 국면은 단순한 기업 간 거래가 아닙니다. 어느 나라의 반도체 생태계가 AI 시대의 핵심 공급망을 장악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이재용 회장의 선밸리행이, 그리고 이달 말 예정된 젠슨 황과의 회동이 그 흐름에서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지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적어도 이번 만남은 사진 찍는 자리가 아닌 것만큼은 확실해 보입니다.
참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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