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저는 마트에서 올리고당이나 물엿을 살 때 가격이 왜 이렇게 올랐나 의아하게 생각했을 뿐, 그 배경에 7년짜리 조직적 담합이 있을 거라고는 전혀 몰랐습니다. 2025년 7월 7일, 공정거래위원회가 역대 최대 과징금인 7,476억 원을 전분·전분당 제조사 4곳에 부과하면서 그 이유를 비로소 알게 됐습니다. 일반적으로 "가격이 오르면 원재료 때문이겠지"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훨씬 더 계획적인 구조가 있었습니다.

과징금 7,476억, 숫자만 봐선 실감이 안 납니다
공정위가 이번에 부과한 과징금 7,476억 원은 담합 사건으로는 국내 역대 최대 규모입니다. 불과 두 달 전, 밀가루 7개사에 부과됐던 6,710억 원을 넘어섰습니다. [출처: 공정거래위원회]
이번에 제재를 받은 업체는 대상, 사조CPK, 삼양사, CJ제일제당 4곳입니다. 이들이 국내 B2B 전분 시장에서 차지하는 시장 점유율은 95.7%, 전분당 시장에서는 86.4%에 달합니다. 여기서 B2B란 기업 간 거래(Business to Business)를 의미하며, 일반 소비자가 아닌 식품 제조사나 제지사, 철강사 등 사업자를 상대로 원재료를 납품하는 방식입니다. 이 4개사가 시장 대부분을 쥐고 있으니, 담합이 실제로 이뤄졌다면 그 영향이 얼마나 광범위했을지 짐작이 갑니다.
관련매출액은 6조 525억 원으로 산정됐고, 적용된 부과기준율은 15%입니다. 부과기준율이란 공정위가 관련매출액에 곱해 과징금의 기준을 정하는 비율로, 이번 사건처럼 '매우 중대한 위반행위'로 분류되면 최대 20%까지 적용 가능합니다. 20%까지 올라가지 않은 이유는 조사와 심의 협조에 따른 감경 20%가 4개사 모두에 적용됐기 때문입니다. 반면 대상은 법 위반을 반복한 전력이 있어 10% 가중됐습니다.
7년 5개월, 담합이 관행처럼 굳어진 구조
제가 이 사건에서 가장 놀랐던 부분은 담합의 정교함이었습니다. 단순히 "가격을 같이 올리자"는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공정위 조사에 따르면, 4개사는 2018년 5월부터 2025년 10월까지 총 13차례의 합의를 거쳐 전분·전분당 가격을 조율했습니다. 원가 상승 시기에는 8차례 인상을 합의했고, 반대로 국제 옥수수 가격이 내릴 때는 5차례에 걸쳐 인하 폭을 최소화하고 인하 시기를 늦추기로 합의했습니다. 가격을 올릴 때만 담합한 게 아니라, 내릴 때도 담합한 겁니다.
특히 이들은 과점 구조(소수의 업체가 시장을 지배하는 구조)를 활용해 거래처에 제시할 환율, 원료가격 등 가격 변경 근거까지 사전에 맞췄습니다. 심지어 공문을 발송하는 날 서로 상대방 회사를 방문해 내용이 합의대로 작성됐는지 확인하고, 우체국까지 함께 가서 실제 발송 여부를 감시했습니다. 제 경험상 이 정도면 일반적인 기업 간 정보 공유와는 전혀 다른 수준입니다.
이 기간 중 가장 피해가 컸던 시기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코로나19가 겹쳤던 2022년 전후입니다. 이때 전분당 가격은 담합 시작 시점인 2018년 5월 대비 최대 73% 상승했습니다. [출처: 공정거래위원회 정책브리핑] 정부가 옥수수 원재료에 0% 할당관세를 적용하며 물가 부담 완화에 나서고 있던 시기에도 가격을 내리지 않은 셈입니다. 할당관세란 특정 품목에 한시적으로 세율을 낮추거나 0%로 적용해 수입 단가를 낮추는 정책 수단인데, 그 혜택이 소비자나 실수요처에 전달되지 않고 제조사 이익으로 흡수된 것입니다.
담합이 이 정도로 조직화됐던 데는 20년 이상 이어진 4개사의 과점 체제가 바탕에 있습니다. 공정위도 이 점을 재발 위험 요소로 명시하며 향후 3년간 반기마다 가격 변경 내역을 보고하도록 하고, 독자적 가격재결정 명령까지 내렸습니다.
피해는 어디로 갔나, 소비자 몫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B2B 담합은 기업들끼리의 문제"라고 보는 시각도 있지만, 저는 이번 사건을 보면서 그게 전혀 맞지 않는다는 걸 다시 확인했습니다.
전분당은 물엿, 올리고당 등으로 소비자가 직접 구매하는 경우도 있지만, 사실 더 큰 문제는 원재료로 쓰이는 범위입니다. 제과, 제면, 맥주, 소스는 물론 골판지나 건축자재에도 전분이 들어갑니다. 즉, 전분·전분당 가격이 오르면 그걸 원재료로 쓰는 수많은 제조사의 원가가 올라가고, 그 부담은 결국 완제품 가격에 반영돼 소비자에게 전가됩니다.
이번 사건에서 담합으로 인한 피해 구조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대형 실수요처(식품·제지·철강사)는 가격 인하를 요구해 일부 혜택을 받았지만, 소규모 실수요처나 대리점은 최대한 높은 가격을 유지했습니다.
- 원가 절감 혜택을 받았어야 할 할당관세 효과가 제조사 영업이익 개선으로 흡수됐습니다.
- 최종 소비자는 과자·빵·음료 등의 가격 상승을 통해 간접적으로 피해를 입었습니다.
이 사건과 별개로, 공정위는 같은 날 이들 4개사의 입찰 담합 및 부산물 가격 담합 혐의에 대해서도 심의 절차를 개시했습니다. 입찰 담합이란 특정 거래처 납품 입찰에서 낙찰 예정자, 입찰 가격, 물량을 미리 합의해 경쟁을 형식화하는 행위입니다. 관련매출액이 약 9,400억 원으로 추산되는 만큼, 추가 과징금 규모도 상당할 수 있습니다. 단백피, 글루텐 등 부산물 가격 담합 관련 매출액은 1조 5,500억 원으로 집계됐습니다.
검찰도 지난 4월 대상, 사조CPK, CJ제일제당 법인 3곳과 관계자 25명을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기소했습니다. 삼양사는 수사에 협조해 기소 대상에서 제외됐습니다.
이 사건이 마무리됐다고 보기는 아직 이릅니다. 입찰 담합과 부산물 담합에 대한 전원회의 결과가 남아 있고, 형사 재판도 진행 중입니다. 제 경험상 이런 규모의 담합은 과징금 하나로 끝나지 않고 민사 손해배상 청구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로 피해를 입은 소규모 실수요처나 대리점이 이번 공정위 결정을 근거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독자분들 중에 이 4개사로부터 전분·전분당을 납품받은 업체가 있다면, 해당 기간의 구매 기록을 보존해두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법률 또는 세무 조언이 아닙니다.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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