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기름값을 통제하면 소비자는 무조건 이득일까요? 저는 이 질문이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다는 걸, 요즘 주유소 현장 소식을 접하면서 새삼 실감했습니다. 석유최고가격제가 시행된 지 두 달이 다 되어가는 지금, 겉으로 보이는 '가격 안정' 뒤에 조용히 무너지고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호르무즈와 한국 기름값, 왜 연결되는가
중동에서 전쟁이 터졌다는 뉴스를 들으면 솔직히 '먼 나라 이야기'처럼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건 절대 남의 일이 아닙니다. 주유소 가격판을 보다 보면, 중동 정세가 흔들릴 때마다 숫자가 슬금슬금 올라가는 걸 체감하게 됩니다.
호르무즈 해협(Strait of Hormuz)은 전 세계 원유 공급량의 약 20%가 통과하는 해상 요충지입니다. 여기서 호르무즈 해협이란, 페르시아만과 오만만을 잇는 좁은 바닷길로, 사우디아라비아·이란·UAE 등 주요 산유국의 석유가 반드시 거쳐야 하는 물류 동맥입니다. 1·2차 오일 쇼크 당시 영향받은 글로벌 공급량이 9% 수준이었는데, 호르무즈를 통과하는 물량은 그 두 배를 훌쩍 넘습니다. 이번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충돌 국면을 전문가들이 '3차 오일 쇼크' 가능성으로 거론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출처: 에너지경제연구원](https://www.keei.re.kr)).
흥미로운 사실은, 한국이 이런 위기 상황에서도 독자적인 정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는 점입니다. 한국은 현재 세계 5위의 정제 능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정제 능력(Refining Capacity)이란, 원유를 가솔린·경유·항공유 등 실제 사용 가능한 석유제품으로 가공할 수 있는 규모를 뜻합니다. 심지어 산유국인 미국과 호주도 한국산 정제유를 수입합니다. 이 기반은 1973년 박정희 정부의 중화학공업 육성 정책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내수를 훌쩍 뛰어넘는 대규모 설비를 짓고 석유화학 수출 산업으로 키운 결과입니다. 제가 처음 이 사실을 접했을 때는 솔직히 예상 밖이었습니다. 산유국에 기름을 파는 나라가 한국이라니, 쉽게 상상이 되지 않았거든요.
자영주유소가 조용히 무너지는 이유
일반적으로 기름값 상한제가 생기면 소비자도, 주유소도 같이 숨통이 트인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도 처음엔 그렇게 봤습니다. 그런데 실제 현장 상황은 전혀 달랐습니다.
경기도 내 주유소의 79.8%는 자영 주유소입니다. 전체 2,185곳 중 1,744곳이 개인이 운영하는 곳입니다([출처: 한국석유공사 오피넷](https://www.opinet.co.kr)). 문제는 석유최고가격제 하에서 자영 주유소만 구조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놓인다는 점입니다.
알뜰주유소와 직영주유소의 차이를 비교해 보면 이렇습니다.
- 알뜰주유소: 정부가 공동구매 방식으로 정제유를 조달해줘 매입 원가 자체가 낮습니다.
- 직영주유소: 정유사가 직접 운영하므로 정제유를 자사 원가에 가깝게 공급받습니다.
- 자영주유소: 위 두 채널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고 시장 가격으로 유류를 매입합니다.
이 구조 때문에 자영 주유소는 알뜰주유소보다 리터당 최대 30원 비싸게 팔 수밖에 없습니다. 손님은 당연히 더 싼 곳으로 몰립니다. 실제로 수원의 한 자영 주유소는 휘발유를 리터당 1,990원에 판매하고 있지만, 유류 매입가에 물류비와 카드 수수료까지 떼고 나면 리터당 약 30원, 마진율로는 1.5%밖에 남지 않습니다. 통상 자영 주유소의 마진율이 5% 안팎인 것과 비교하면 3분의 1 이상 쪼그라든 수치입니다.
여기서 카드 수수료 구조가 특히 문제입니다. 카드 수수료는 판매 금액의 일정 비율로 부과됩니다. 유가가 오르면 판매 금액 자체가 커지니까, 마진은 그대로인데 수수료 부담만 자동으로 늘어납니다. 한국석유유통협회가 정부에 한시적 카드 수수료율 인하를 건의한 이유가 바로 이겁니다. 제 경험상, 이런 구조적 문제는 가격만 눌러서는 절대 해결되지 않습니다.
석유최고가격제, 진짜 효과는 어디까지인가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국무회의에서 "석유최고가격제가 없었다면 기름값이 리터당 2,500~2,600원까지 갔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 발언만 보면 정책 효과가 분명해 보입니다. 실제로 정부 개입이 없었다면 소비자 부담이 훨씬 컸을 거라는 점은 저도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석유최고가격제란, 정부가 법적으로 석유제품의 판매 상한 가격을 지정해 시장 가격이 일정 수준을 넘지 못하게 막는 제도입니다. 한국에서 이 제도가 실시된 건 30년 만의 일입니다. 단기적으로 소비자 물가를 방어하는 효과는 있지만, 공급망 내부에서 비용이 어디론가 전가된다는 점이 구조적 한계입니다.
에너지 안보(Energy Security) 측면에서도 짚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에너지 안보란, 국가가 필요한 에너지를 안정적이고 합리적인 가격에 확보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합니다. 자영 주유소가 줄줄이 폐업하면 지역 유류 공급망이 무너지고, 이는 에너지 안보에 직접적인 타격이 됩니다. 단기 가격 안정을 위한 정책이 중장기적으로 공급 인프라를 훼손하는 역설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 이건 제가 진지하게 우려하는 부분입니다.

UAE의 OPEC(석유수출국기구) 탈퇴 움직임도 이 맥락에서 주목됩니다. OPEC이란 산유국들이 생산량을 조율해 유가를 안정시키려는 카르텔 조직입니다. UAE는 사우디 주도의 감산 체제에 오랫동안 불만을 품어왔고, 이번 탈퇴 시사는 그 누적된 갈등이 터진 것으로 해석됩니다. OPEC 카르텔이 흔들리면 국제 유가 변동성은 더 커질 수 있고, 그 충격은 결국 한국 소비자에게도 돌아옵니다.
석유최고가격제가 가져다준 단기 안정의 이면에, 자영 주유소 생태계의 붕괴와 에너지 공급망 약화라는 비용이 조용히 쌓이고 있습니다. 정책의 효과는 가격판 숫자로만 측정할 수 없다는 걸, 이번 사태가 다시 한번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소비자로서 싼 기름을 넣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기름을 넣을 주유소가 동네에 남아 있어야 한다는 점도 함께 봐야 할 것입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에너지·금융 정책 조언이 아닙니다.
참고: https://www.chosun.com/economy/money/2026/05/12/TRVD4CDCRREGLBOSAD444ECSC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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