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나라가 어디입니까? 저는 솔직히 미국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스리마일섬 사고 이후 수십 년간 신규 원전을 거의 짓지 않은 나라가 미국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지금 그 미국이 일본 자본 100조 원을 끌어들여 차세대 원전 패권을 잡겠다고 나섰습니다. 이게 단순한 에너지 정책 이야기가 아니라 AI 패권 경쟁의 연장선이라는 점에서 저는 이 뉴스를 꽤 오래 들여다봤습니다.
SMR이란 무엇이고, 왜 지금인가
제가 처음 SMR이라는 단어를 접했을 때는 솔직히 '그냥 작은 원전 아닌가' 하고 넘겼습니다. 그런데 파고들수록 기존 원전과는 접근 방식 자체가 다른 기술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SMR(Small Modular Reactor)이란 발전 출력 300MW 이하의 소형 원자로를 의미합니다. 기존 대형 원전이 1,000MW 이상인 것과 비교하면 출력 자체는 작지만, 공장에서 부품을 대량 생산한 뒤 현장에서 조립하는 방식이라 건설 기간과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해 원전을 '짓는' 개념에서 '찍어내는' 개념으로 전환하는 겁니다.
왜 지금이냐고 물으신다면, AI 때문입니다. 데이터센터의 전력 소비는 최근 10년간 3배로 증가했고, 향후 5년 안에 다시 2~3배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출처: 국제에너지기구(IEA)](https://www.iea.org)). 미국 내에서는 전력 공급이 수요 대비 최대 20% 부족해질 가능성도 거론됩니다. 아마존, 구글 같은 빅테크 기업들이 SMR에 투자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데이터센터 옆에 SMR을 바로 붙여 설치할 수 있다는 점이 결정적입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미 2025년 5월에 SMR 인허가 절차 신속화를 담은 대통령령 4개를 발표했고, 2050년까지 원전 설비용량을 현재의 4배로 확대한다는 목표를 공식화했습니다. 1990년 112기였던 미국 내 원자로 수가 현재 약 90기까지 줄어든 상황에서 이 목표를 달성하려면 SMR 없이는 불가능한 계산입니다.
100조 원 투자, 일본에게 남는 게 뭔가
여기서 제가 가장 궁금했던 건 일본 입장이었습니다. 관세 협상 테이블에서 나온 이야기라는 맥락 때문에 처음엔 '어쩔 수 없이 쓰는 돈 아닌가'라는 시각도 있었는데, 저는 조금 다르게 봤습니다.
이번 투자 구조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GE버노바와 히타치제작소가 공동 추진하는 SMR에 최대 400억 달러(약 60조 원) 투자
- 미국 SMR 기업 뉴스케일 파워(NuScale Power)에 최대 250억 달러(약 38조 원) 투자
- 합산 약 650억 달러, 총 100조 원 규모
- 첫 건설 후보지: 미국 남부 테네시주
뉴스케일 파워는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로부터 SMR 설계 인증을 취득한 업체로, 사실상 서방 세계에서 가장 앞서 있는 민간 SMR 기업입니다. 여기에 250억 달러를 넣는다는 건 단순한 재정 지원이 아니라 공급망 지분을 확보하겠다는 뜻입니다.
인허가(Licensing)란 원전 건설과 운영에 앞서 규제 당국으로부터 안전성과 적합성을 검증받는 절차를 말합니다. 미국 정부는 이미 테네시주 부지에 대한 SMR 인허가 절차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일본이 이 단계부터 공급망에 참여한다면, 향후 미국이 SMR을 제3국에 수출할 때 일본 기업이 자연스럽게 공급망 파트너로 따라 들어갈 수 있습니다.
러트닉 미 상무장관이 "미일이 함께 공급망을 구축하고, 그 기술을 세계에 수출할 좋은 기회"라고 말한 것도 이 맥락에서 읽혀야 합니다. 일본으로서는 관세 협상 카드로 쓴 돈이 결과적으로 차세대 에너지 산업 진입권이 되는 구조입니다. 저는 이게 단순한 대미 투자가 아니라 꽤 계산된 포지셔닝이라고 봤습니다.

한국은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이 소식을 접하면서 제가 가장 먼저 떠올린 건 우리나라였습니다. 한국도 두산에너빌리티나 SK그룹이 미국 SMR 기업과 협력하거나 지분 투자를 추진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일본이 이 규모로 공급망 전체를 파고든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공급망(Supply Chain)이란 원자재 조달부터 부품 생산, 설계, 시공, 운영까지 이어지는 전체 생산 네트워크를 의미합니다. 원전처럼 복잡하고 규제가 많은 산업에서는 공급망에 먼저 자리 잡은 기업이 이후 수주에서도 압도적으로 유리합니다. 전 세계에서 최근 10년간 착공된 대형 원전의 90%가 중국산 또는 러시아산인 이유도, 이 두 나라가 일찌감치 공급망과 금융 패키지를 함께 제공하는 구조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출처: 세계원자력협회(WNA)](https://www.world-nuclear.org)).
한국 정부도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계획 중 일부를 SMR에 투자할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저는 타이밍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은 이미 구체적인 수치와 부지, 협력사까지 공개 조율 단계입니다. 한국이 같은 방향으로 간다면 늦게 들어가는 만큼 조건이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속도보다 협상력을 갖추고 들어가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공급망이 굳어버리기 전에 포지션을 잡는 게 더 현실적인 선택이라고 봅니다.
이번 미일 SMR 협력이 단순한 에너지 거래로 끝날 가능성은 낮습니다. AI 전력 수요, 중국 견제, 차세대 원전 수출 시장이라는 세 가지 흐름이 동시에 맞물려 있기 때문입니다.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GE버노바와 뉴스케일 파워의 향후 공급망 구성 동향, 그리고 한국 정부의 대미 투자 세부 계획 발표 시점을 함께 주시해보시길 권합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투자 조언이 아닙니다.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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