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를 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까지 됐구나." 한때 세계 2대 강국이라 불리던 나라가, 앞마당이라 여기던 나라들에게 차례차례 등을 돌림 당하고 있다는 걸 실감한 건 사실 꽤 최근 일입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가 러시아의 지역 패권을 얼마나 빠르게 무너뜨리고 있는지, 그리고 그 빈자리를 어떤 나라가 채우고 있는지, 정리해 봤습니다.
근외 붕괴, 러시아가 스스로 판 함정
근외(近外)라는 개념을 처음 접했을 때, 솔직히 좀 놀랐습니다. 이걸 외교 용어로 공식화했다는 게요. 근외란 소련 붕괴 직후인 1990년대 초 러시아 외교부가 만든 개념으로, 구소련에서 독립한 14개 국가를 "완전한 외국이 아닌 러시아의 특별 이해관계 지역"으로 규정한 것입니다. 쉽게 말해 "너희는 독립했지만 여전히 내 앞마당"이라는 선언인 셈입니다.
러시아는 이 논리를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의 명분으로도 활용했습니다. 나토(NATO)가 근외까지 영향력을 확장하는 것을 막겠다는 주장이었는데, 결과는 정반대로 흘렀습니다. 침공 이후 구소련 국가들이 오히려 더 빠르게 러시아에서 이탈하기 시작했으니까요. 제가 직접 겪어본 건 아니지만, 이 흐름을 관련 자료들을 통해 추적하다 보니 "자업자득"이라는 말이 자꾸 머릿속에 맴돌았습니다.
미국 인권재단의 케이시 미셸 디렉터는 "러시아는 이제 글로벌 강국은커녕 지역 강국조차 아니다"라고 단언했는데, 이 한 문장이 현재 상황을 가장 잘 압축하는 것 같았습니다. 근외를 지키려 시작한 전쟁이 오히려 근외를 소멸시키는 아이러니, 이게 지금 러시아가 처한 현실입니다.

탈러시아, 담론을 넘어 실제 행동으로
제 경험상, 국제 뉴스는 대개 선언으로 시작해 흐지부지 끝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번 탈러시아 흐름은 조금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말이 아닌 실제 제도적 변화가 따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장 극적인 사례가 아르메니아입니다. 아르메니아는 집단안보조약기구(CSTO) 참여를 2024년 사실상 중단했습니다. CSTO란 소련 붕괴 후 러시아 주도로 만들어진 군사동맹으로, 나토에 대응하는 구소련권 집단방위 체계를 말합니다. 아르메니아가 여기서 손을 뗀 결정적 계기는 2023년 9월 아제르바이잔의 공격 당시 CSTO가 아무런 군사적 대응도 하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동맹이 있어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직접 확인한 셈이죠. 그 이후 아르메니아 의회는 EU 가입 의사를 공식 선언했고, 올해 5월에는 첫 EU-아르메니아 양자 정상회의까지 열렸습니다.
키르기스스탄은 다른 방향으로 선을 그었습니다. 중학교 교과서에서 러시아제국과 소련 시절을 "식민지배"로 공식 표현하기 시작한 겁니다. 모스크바에서 열린 역사 전문가 회의에서 러시아 학자들이 이 표현에 반발했지만, 키르기스스탄 측은 "소비에트화는 본질적으로 식민주의였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헤게모니(Hegemony)라는 개념이 있는데, 이는 한 국가나 세력이 다른 집단을 정치·문화·이데올로기적으로 지배하는 구조를 뜻합니다. 키르기스스탄은 지금 바로 이 헤게모니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있는 겁니다.
카자흐스탄도 마찬가지입니다. 토카예프 대통령은 2024년 자국의 역사적 뿌리를 소련이 아닌 13세기 킵차크 칸국으로 공식 선언했습니다. 역사 서술 자체를 바꾸는 건 단순한 상징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미래 세대가 자신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일이니까요.
탈러시아 움직임을 보여주는 핵심 변화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아르메니아: CSTO 참여 사실상 중단, EU 가입 의사 공식 선언
- 키르기스스탄: 교과서에 소련 시절을 "식민지배"로 표기
- 카자흐스탄: 국가 정체성을 소련이 아닌 킵차크 칸국으로 재규정
러시아 무기 수출 급감과 트로피랩의 등장
군사력과 경제력은 떼어놓고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저는 이 부분이 가장 흥미로웠는데, 전쟁 중인 나라의 무기 수출이 어떻게 됐는지 숫자로 확인했을 때 꽤 선명하게 와닿았습니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가 올해 3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러시아의 무기 수출은 2016~2020년 대비 64% 감소했습니다. 세계 무기 시장에서의 점유율도 같은 기간 21%에서 6.8%로 쪼그라들었습니다. [출처: SIPRI] SIPRI는 러시아가 상위 10개 무기 수출국 중 수출이 감소한 유일한 나라라고 명시했습니다. 무기는 팔리지 않고 전장에서 소모되는 구조인 겁니다.
핀란드 중앙은행 산하 경제연구소(BOFIT)는 올해 3월 보고서에서 러시아의 경제성장률이 1% 안팎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출처: BOFIT] 군수 관련 제조업은 20% 성장했지만 민간 제조업 성장률은 0.4%에 불과합니다. 전쟁 경제(War Economy), 즉 민간 자원이 군사 분야로 집중되면서 일반 산업이 고사하는 경제 구조에 완전히 진입한 셈입니다.
그 반대편에서 우크라이나는 전혀 다른 방향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최근 '트로피랩(Trophy Lab)'을 출범했습니다. 트로피랩이란 전장에서 노획한 러시아 미사일, 드론, 차량을 분석해 취약점 데이터를 추출하고, 이를 동맹국들과 공유하는 보안 플랫폼입니다. 올해 1월 34세의 나이로 국방장관에 오른 미하일로 페도로우 장관은 "전장에서 확보한 모든 무기는 이제 자유세계를 위한 지식의 원천이 된다"고 밝혔습니다. 디지털전환부 장관 출신답게, 데이터와 AI를 국방에 접목하는 방식이 상당히 체계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이 플랫폼이 실제로 얼마나 활용될지는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발상 자체는 예상 밖이었습니다.
북한 급부상과 한반도 안보 지형 변화
구소련 국가들이 러시아 곁을 떠나는 동안, 그 빈자리를 조용히 채운 나라가 있습니다. 북한입니다. 솔직히 이건 저도 처음엔 과장된 분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실제 움직임을 보니 단순한 수사(修辭)가 아니었습니다.

북한은 우크라이나와의 소모전에 허덕이는 러시아에 포탄과 병력을 제공하며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러시아는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군사기술 이전과 경제 지원으로 화답하고 있습니다. 과거 러시아가 구소련 국가들에게 했던 방식 그대로입니다. 여기서 군사기술 이전이란 첨단 무기 체계나 미사일 기술 등을 북한에 제공하는 것으로, 한반도 안보 지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러시아와 중국의 관계도 빠르게 밀착되고 있습니다. 올해 5월 베이징 정상회담에서 양국은 40건 이상의 무역·기술·미디어 협력 협정에 서명했고, 2001년 체결된 우호조약 연장에도 합의했습니다. 지난해 양국 교역액은 약 2,280억 달러에 달했으며, 올해 1분기 러시아의 중국 원유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35% 증가했습니다.
이 구도에서 제가 가장 우려스럽게 보는 건 북한의 위치 변화입니다. 러시아의 전략적 무게중심이 극동으로 이동하면서, 북한은 더 이상 고립된 변방 국가가 아니라 러시아-중국 축의 핵심 파트너로 편입되고 있습니다. 이 변화가 한반도 안보에 어떤 파장을 가져올지, 단기간에 답을 내리기 어렵지만 방심할 수 없는 흐름인 건 분명합니다.
러시아의 '근외'가 무너진 자리에 북-러-중의 새로운 축이 형성되고 있다는 게 지금 지정학 지형의 핵심입니다. 과거의 힘이 빠지는 속도만큼, 새로운 연대의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 흐름은 계속 주의 깊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크라이나 전황이 어떻게 마무리되느냐에 따라 이 구도가 또 어떻게 달라질지, 앞으로도 꾸준히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참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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