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저는 AI가 제조업을 바꾼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반쯤은 흘려들었습니다. 그런데 함정 설계에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가 직접 등장했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전장(戰場)의 문제를 빅테크가 같이 풀겠다고 나선 것, 이건 단순한 협업 행사가 아닙니다.
AI와 함정, 왜 지금 이 조합인가
제가 방산 분야를 관심 있게 지켜보면서 느낀 것 중 하나는, 이 업계가 변화에 유독 보수적이라는 점이었습니다. 당연한 얘기입니다. 실전에 나가는 장비에 검증되지 않은 기술을 쓸 수는 없으니까요. 그런데 최근 흐름은 조금 다릅니다.
인구절벽이라는 현실이 군 운용 방식을 근본부터 흔들고 있습니다. 병력이 줄면 함정을 운용할 인원도 줄고, 그 빈자리를 결국 자동화와 AI가 채워야 한다는 논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이 맥락에서 한화오션이 주최한 '제4회 차세대 스마트 함정 기술 연구회'는 단순히 기술을 발표하는 자리가 아니라, 미래 해군의 운용 철학을 함께 논의하는 장이었다고 봅니다.
연구회에는 군, 학계, 방산업체 전문가 120여 명이 참석했고,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 클라우드 전문가도 직접 무대에 올랐습니다. 이 자리에서 MS 측은 에이전트(Agent) 중심 인프라 개념을 소개했습니다. 여기서 에이전트란 특정 목표를 스스로 판단해 수행하는 AI 소프트웨어 단위를 말합니다. 사람이 일일이 지시하지 않아도 상황을 인식하고 행동을 결정하는 구조입니다. 함정 운용에 적용하면 승조원의 반복 업무를 AI가 대신 처리하고, 사람은 더 복잡한 판단에 집중할 수 있게 됩니다.
구글 클라우드 측이 강조한 소버린 AI(Sovereign AI)도 눈에 띄었습니다. 소버린 AI란 국가나 기관이 데이터 주권을 완전히 보유한 채 운영하는 AI 환경을 의미합니다. 외부 서버에 군사 데이터가 오가지 않도록 폐쇄망 안에서 AI를 구동하는 방식입니다. 저는 이 개념이 오히려 방산 분야에서 가장 현실적인 AI 도입 경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보안이 전제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AI도 군에서 쓸 수 없으니까요.
이번 연구회의 핵심 기술 흐름
이번 연구회가 단순 쇼케이스에 그치지 않았다고 보는 이유는, 다루는 기술의 층위가 꽤 구체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직접 관련 내용을 들여다봤는데, 설계에서 유지보수까지 함정 생애주기 전체를 AI로 연결하겠다는 그림이 보였습니다.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 노명일 교수는 전산 설계와 시뮬레이션에 AI를 접목하는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MRO(Maintenance, Repair and Overhaul)라는 개념도 이날 자주 등장했습니다. MRO란 장비의 유지·수리·정밀점검 체계를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것을 말하며, 함정처럼 고가의 복잡한 시스템에서는 운용비 절감의 핵심 고리입니다. AI가 실시간으로 장비 상태를 분석하고 고장을 예측하면, 사람이 직접 점검하는 주기와 범위를 줄일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한화시스템 측이 발표한 '병력 절감형 스마트 배틀십(Battleship)' 개념도 저는 꽤 설득력 있게 봤습니다. 무인 자동화 기술과 첨단 AI를 결합해 최소한의 인원으로 최대한의 전투 역량을 내겠다는 것인데, 이게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인구 감소라는 사회 현실과 맞닿아 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국방부 역시 유·무인 복합체계(MUM-T, Manned-Unmanned Teaming)를 미래 전력 운용의 핵심 축으로 설정하고 있습니다([출처: 국방부](https://www.mnd.go.kr)). MUM-T란 유인 플랫폼과 무인 플랫폼이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협력 작전을 수행하는 개념입니다.
이번 연구회에서 논의된 핵심 기술 방향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에이전트 AI 기반 함정 운용 자동화
- 소버린 AI를 활용한 폐쇄망 내 데이터 처리
- AI 전산 설계 및 시뮬레이션을 통한 설계 기간 단축
- MRO 혁신을 위한 예지정비(Predictive Maintenance) 체계 구축
- 무인 자동화 기술을 결합한 병력 절감형 함정 설계
여기서 예지정비(Predictive Maintenance)란 고장이 발생하기 전에 AI가 이상 징후를 사전에 감지해 정비 시점을 예측하는 방식입니다. 사후 수리 방식보다 비용과 가동 중단 시간을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
빅테크만의 잔치가 아니어야 하는 이유
솔직히 이런 대형 연구회를 볼 때마다 드는 걱정이 하나 있습니다. 대기업과 글로벌 빅테크가 주도하는 담론이 중소기업이나 스타트업과 실질적으로 연결되는지의 문제입니다.
마침 연구회 다음 날인 20일, 방위산업진흥회가 주관한 '함정분야 중소·스타트업 우수기술 피칭데이'가 서울 마포구에서 열렸습니다. HD현대중공업, 한화오션, HJ중공업, 한화시스템 등 주요 방산 대기업이 참석한 가운데, 30여 개 중소기업이 기술을 발표하고 1대1 매칭 상담을 진행했습니다. 총 30건의 상담이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이 행사에서 발표한 기업들의 면면이 제 눈길을 끌었습니다. 씨드로닉스(자율운항·무인수상정), 솔빛시스템(함정 지능형 감시체계), 크라우드웍스(함정 데이터 최적화), 케이엔에스(해상작전 위성통신체계) 등입니다. 이름만 들어서는 낯설 수 있지만, 각각이 다루는 기술은 앞서 연구회에서 논의된 핵심 방향과 정확히 맞닿아 있습니다. 대기업이 그림을 그리고, 이 그림에 맞는 부품을 스타트업이 채우는 구조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방위산업 생태계에서 중소·스타트업 협력의 중요성은 이미 정책 차원에서도 인식되고 있습니다. 방위사업청은 민간 혁신기술의 방산 적용을 지속적으로 확대하는 방향을 추진 중이며, 관련 협력 프로그램을 정례화하고 있습니다([출처: 방위사업청](https://www.dapa.go.kr)). 저는 이 흐름이 올바른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1대1 매칭 30건'이 실제 계약이나 공동 개발로 이어지는 사례가 얼마나 되는지는 꾸준히 지켜봐야 할 것입니다.

~라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행사 자체보다 그 이후 실질적인 계약과 양산 단계까지의 연결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피칭 행사가 연례 이벤트로 소비되지 않으려면, 참가 기업들의 기술이 실제 함정 사업에 반영되는 후속 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될 필요가 있습니다.
AI가 전장을 바꿀 수 있느냐는 질문에 저는 이미 답이 나오고 있다고 봅니다. 문제는 속도가 아니라 구조입니다. 빅테크의 기술력과 대기업의 시스템 통합 역량, 그리고 스타트업의 민첩함이 실제로 연결되는 생태계가 만들어져야 K해양방산이 말뿐인 구호로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앞으로 이 연구회가 몇 회를 더 거듭하면서 어떤 실제 함정에 어떤 기술이 탑재되는지, 그 결과를 계속 지켜볼 생각입니다.
참고: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5664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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